#1 왕정복고기 연극의 시작
1642년, 청교도들이 영국의 모든 극장을 폐쇄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배우들은 박해받았다. 모든 연극적 행사는 엄격하게 규제받았지만 약간의 가벼운 연희 정도는 은밀하게 성행했다. 1660년 프랑스에 거주하던 찰스 2세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국가를 통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절대군주제가 회복된 것이고 이로 인해 이어지는 시기를 '왕정복고기(The Restoration)'라고 부르는 것이다. 왕과 궁정이 복귀하면서 영국 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셰익스피어 시대 런던의 연극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연극이었다. 망명 기간 동안 프랑스에 머물렀던 궁정 식구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식 공연에 영향을 받았고, 그 경험을 영국 연극에 이식시키고자 했다. 이때 최초로 여성 극작가와 여성 배우가 등장한다.
#2 왕정복고기의 드라마
왕정복고기의 극작가들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써진 연극을 계속 제작하였지만, 그것을 신고전주의 식으로 개작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 시대에 가장 주종을 이룬 연극은 희극이다. 희극은 보통 로맨스와 대담한 연애담이나 모험 등이 복잡한 플롯으로 얽혀 있는 특징을 가진다. '음모희극(comedies of intrigue)'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애프라 벤'으로 영국 최초의 여성 극작가이자 최초의 전업 작가이다. 그녀의 몇몇 작품은 스페인 연극과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외설적이고 음란한 표현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녀는 매우 능숙하게 짜인 비극, 희극, 그리고 인간의 도덕 문제를 다룬 작품도 썼다.
왕정복고기의 드라마가 유명하게 된 것은 '풍습희극(comedy of manners)'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극작가인 몰리에르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풍습희극은 상류계층의 유행과 결점에 초점을 맞추어 간통, 성적 탈선, 배신 등을 다룬다. 이 같은 사회적인 관습과 규범에 일침을 가하고 명예를 중요시하는 상류계층의 위선을 풍자한다. 예를 들어 우아한 척하는 방탕 무도한 사회를 풍자하여 상류계층에 속한 이들의 잘못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다른 전형적인 특징으로는 전통적인 유형별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인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바로 각각의 바람이나 개성,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3 왕정복고기의 극장
왕정복고기 초기에 찰스 2세는 제한된 인원에게 런던의 모든 연극 제작을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을 줬다. 후에 영국 의회는 이 독점권에 이의를 제기하여 런던 극장 규제를 위한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고, 엘리자베스 1세 때 설립된 행정당국의 규제를 이어갔다.
당시 런던을 대표하는 극장들은 이탈리아식 극장과 엘리자베스식 극장 구조를 혼합한 실내 구조로 되어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야외 공설 극장 전통은 사라지고, 실내 극장 안에 프로시니엄 아치로 된 건물로 지어졌다. 객석은 등받이가 없는 벤치이며, 보다 나은 시야 확보를 위해 약간의 경사가 있었다. 극장의 규모나 다른 부분에서도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설극장과 흡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시대 무대의 가장 독특한 점은 무대가 거의 같은 크기로 프로시니엄 앞 무대와 뒤면이 거의 같은 크기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무대 전체는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무대 뒤쪽이 약간 높게 경사를 두어 제작했다. 위층에는 발코니가 딸린 프로시니엄 문들이 양측에 각각 두 개씩 있었고, 이것은 등장인물의 등퇴장용으로 사용되거나 엿보기 장면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
무대장치, 조명, 의상 등의 시각적인 요소들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프로시니엄 아치, 원근법 그림 배경, 윙 앤 셔터 배경 장치들이 주요 요소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고유성을 유지했는데 프로시니엄 아치 문, 발코니, 확장된 에이프런 무대 등은 엘리자베스 시대 무대의 흔적이다. 영국 사람들은 좀처럼 엘리자베스 시대 무대의 익숙한 특징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4 또다시 변화
희극의 외설적이고 음란한 풍자의 모습은 청교도들의 신경을 건드다. 청교도들의 공격을 받은 후로 연극은 성적인 내용들을 많이 덜어냈고, 도덕성을 강조하게 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더 보수적이고 중산층 중심으로 도덕적, 감성적이 되었다. 관객들은 신고전주의 드라마에 싫증을 느끼며 감상주의와 인상적인 볼거리로 눈을 돌렸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보상을 받는 전통적인 도덕관을 강조한 '감상희극'이 신고전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 18세기 중반 영국 희극을 지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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