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중세의 연극
초기의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의 사이에 위치한 낮은 시대로 보았기에 이 시대를 중간 시대(middle ages) 또는 중세(medieval)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노플은 무역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비잔틴 제국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졌고, 사치에 집중했으며 연극을 포함한 예술과 오락은 끝나지 않은 채 번성했다. 직업 공연자들의 후손들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을 돌아다니며 저글링, 공중제비, 줄타기, 무용 등의 여러 오락들을 공연했다. 그와 구분되는 실제 연극을 얼마나 공연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로스비타'의 희곡과 '에델볼트'의 수도원 지참서를 보면 로마 연극의 지속성과 기독교의 소규모 연극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로스비타는 최초로 알려진 여성 극작가이자 로마 이후 최초의 작가이다. 교단의 수녀였던 로스비타는 귀족 태생이어서 다른 수녀들보다 세상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스비타는 7편의 희곡을 썼는데, 그 작품이 실제로 공연되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전 드라마의 형식적인 짜임과 중세 기적극과 도덕극의 주제로 흥미로운 작품들을 썼고, 극작품 이외에 시와 성자들의 전기와 역사를 쓰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 연극은 상당수가 종교적이었다. 실제로 연극은 교회나 성당에서 공연되었다. 중세 초기 음악의 대중적인 형식은 두 집단이 서로 노래를 주고받는 것이었는데, 이는 연극에서 대사를 주고받는 형식과 비슷했다. '트로푸스'라고 불리는 음악 소절이 예배에 사용되었는데,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위한 대본도 따로 있었다. 음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이 트로푸스는 어느 수도원에서나 부르게 되었고, 이를 이용한 작은 연극이 포함된 예배도 교회나 성단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은 학문과 교회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쓰여서 교회 미사에 참여한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2 종교극의 발전
13세기에 이르러서 연극은 일상생활의 언어인 자국어로 된 종교극으로 발전했다. 알아듣기 어려운 라틴어가 자국어로 변화했고, 교회 건물 안에서 행해진 공연이 밖에 세워진 실외 무대로 옮겨졌다. 그 종류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신비극과 도덕극이 그것이다.
신비극 혹은 순환극은 천지 창조부터 최후의 심판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성서 사건을 극화한 종교극이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립적인 한편의 드라마로서 무대에 올렸다. 연속되는 장면들을 공연하는 작은 규모의 극으로, 연극이 연속되어 공연되며 그 구조가 순환적이라 순환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성서적 인물을 관객이 더욱 잘 인식하게 하기 위해 관객들의 친구와 이웃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중세의 극작가들은 종교극을 대중화시키기 위해 대홍수 장면에서 실제로 물을 쏟아 내리는 등 특수효과를 사용했고, 더욱 호소력 있게 하려고 희극도 도입했다.
도덕극은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기독교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도덕극의 주요 내용은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힘 사이의 투쟁이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대립되는 두 측면이 투쟁한다. 이러한 개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더욱 발전해 나가게 된다. 16세기에 이르러서 도덕극은 전문 직업 배우들이 공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종교극에서 탈피하여 점점 세속극으로 전환하게 된다.
세속극 또한 중세에 성행했다. 대중적인 오락물로 분류되는 세속극은 대부분 우스꽝스럽고 불경스럽기까지 했다. 세속극은 야외 종교극의 부산물이었거나 초기 이교도 공연의 전통에서 아주 독립적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이교도와 교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세속극의 배우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어져 온 유랑 배우들의 전통을 유지해왔다. 세속극은 영웅의 업적을 극화한 '민속극'과 인간의 보편적인 나약함을 코믹하게 묘사한 '파르스'라는 두 가지 형식으로 출현했다. 그들은 상스러운 노래와 춤을 추고, 설교와 예배를 희화화하고, 교회를 풍자하는 연극을 공연했다. 주된 주제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의 결점과 추문을 강조했다. 이러한 주된 문제들을 아주 냉소적이고 우스꽝스럽게 연기했다. 그 시대 말에 이르러 직업 연극인이 등장했다. 그들은 궁정이나 귀족에게 소속되었고, 주로 연회 시에 공연되는 단막극 형식의 막간극을 공연했다. 중세의 세속극은 직업적이고 상업적인 연극으로 발전시켰다. 그렇게 연극은 돈을 지불하고 보는 일종의 상품이 되었다.
#3 종교극의 마침표
16세기에 교회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종교극은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에 의해 추방당했다. 종말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종교극에 있던 세속적인 특성들이다. 그것은 결국 종교적인 제재를 앞당기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는 교회와 도시가 연극 제작을 중단했고, 종교극을 금지시키고 불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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