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의 연극적 관습
로마의 역사에 있어서 종교는 가장 중요하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들을 섬겼다. 로마인들의 다신전인 판테온에는 그들이 정복한 지역의 토착민들이 섬기는 신들이 계속해서 첨부되었다. 로마인들도 종교적인 축제들을 무대화했는데, 이것은 고스란히 극장 문화를 탄생시킨 초석이 된다.
로마는 주로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의 관습을 재생했지만, 이것을 초기 이탈리아의 공연전통을 기준으로 바꿨다. 로마의 축제들은 묘기와 줄타기를 하여 그리스의 축제와 달랐고 대중의 관심을 사기 위해 연극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극의 수는 꾸준히 늘어갔다. 로마는 그리스보다 훨씬 오락 위주의 연극을 펼쳐나갔다. 공연을 목적으로 한 로마의 비극은 남아 있지 않았다. 고차원적인 비극에 관심을 집중하는 대신, 로마시대에의 관객들은 희극이나 기타 대중 연희를 더 선호했다. 그들은 아테네의 비극이 강조하는 철학이나 윤리학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비극은 인기가 없었다.
로마의 대중 연희는 로마시대의 관객들의 기호에 영합하고자 대규모로 기획된다. 로마인들은 정복지에서 들여온 부와 노예들로 호강스러운 삶을 누리게 되고, 여가시간도 충분했다. 덕분에 그들은 비단 종교 생사의 일환으로뿐만 아니라 거의 연중무휴로 극장 예술을 즐겼다.
#2 로마의 희극
로마의 극작가들은 그리스의 신희극에 남다른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희극 형식을 가져와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희극 형식으로 완성시켰는데 이 새로운 로마식 희극은 로마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 형식으로는 막과 에피소드를 구분하기 위해 활용되었던 합창 부분을 없앴으며, 대사 사이사이에 음악을 첨부했고,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오해에 오해를 유발하는 엿보기 장면들을 첨가하였다. 흥미롭게도, 이 로마의 신희극이 모든 서양 시트콤의 직접적인 선조가 된다. 신희극의 유형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플라우투스와 테렌러우스는 둘 다 희극으로 유명한 로마 연극의 주요 작가이다.
플라우투스는 가장 인기 있는 로마의 희극작가로, 매우 고상하며 재치와 재능을 겸비한 귀재였다. 그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작품을 썼고,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즐겼다. 마임이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고 그의 작품들이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될 때조차도 로마인들은 그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극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활동했다. 플라우투스가 쓴 21편의 작품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그의 인기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배우로서의 경험이 그가 희극에서 보여주는 연극적 특성들을 설명한다. 느슨하게 연결된 삽화들, 익살스러운 행동과 말장난, 웃음을 자아내는 외양, 관객에게 직접 던지는 대사 등이 그의 희극의 특징이다.
테렌티우스의 희극은 훨씬 세련되었다. 플라우투스의 작품이 감칠맛이 나고 널리 인기를 끈 반면, 테렌티우스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미묘한 표현과 우아한 언어 등에 강조를 두었다. 그의 희극은 우아하지만 덜 소란스럽고 덜 자유롭다. 사색적이지만 재미는 덜하다. 그 역시 대부분 그리스 희극을 모델로 삼아 자신의 희극을 썼다. 둘 또는 그 이상의 그리스 희극을 하나의 고도로 복잡한 극적 행위로 결합하는 것이 테렌티우스 고유의 방법이다. 극이론의 문제를 논하고 관객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도록 독려하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옹호하는 특이한 프롤로그, 삽화적 특성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에 의해 진전되는 듯 보이는 세심하게 고안된 사건들, 더 평범하고 인간적이어서 공감이 가는 인물들이 그의 희극의 특징이다.
현재에도 플라우투스의 작품은 가끔 공연되는 반면, 테렌티우스의 희극은 전혀 공연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세 학교에서 라틴어와 정확한 라틴어 용법을 가르치기 위한 자료로는 플라우투스가 아닌 테렌티우스의 작품이 사용되었다. 로마에서는 늘 희극이 비극보다 인기가 있었지만, 그 인기도 테렌티우스의 사망 이후로 무너져갔다.
#3 로마 연극의 마지막
로마 연극의 쇠퇴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로마의 몰락으로 극장 문화가 쇠퇴한 것만은 아니다. 로마의 극장 문화 자체가 예술성보다는 점점 오락에 가까운 수준이 되더니 결국에는 연극인지 서커스인지 검투 경기인지 판토마임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으로 공연예술이 하락하였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기독교의 부상이 되겠다. 로마는 새로운 신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기독교도들은 자기들의 신이 로마의 판테온 신전으로 흡수되는 데 반대했다. 그들은 연극이 이교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무대 위에서 다루어지는 사악한 등장인물들이 비도덕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로마의 대중 여흥에 들어있는 노골적이고 성적인 내용과 빈번하게 기독교를 풍자하는 태도에 불쾌감을 표했다. 결국, 교회는 극장 예술을 말살하려는 다양한 칙령들을 공표하게 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하나의 조직된 관례로서의 연극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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