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현주의(expressionism)
1915년에서 1945년까지의 시기에 세계는 불안의 시기였다. 한편으로 세계는 라디오, 전화, 사진 등으로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일어났고, 걷잡을 수 없는 물가 폭등과 경기 침체로 경제가 파괴되고 금융 가치가 절하되었다.
표현주의는 미술 양식 중 하나로 실재의 재현이 내적 감정을 왜곡하여 표현하는 예과 문화 분야의 운동이었다. 연극에서의 표현주의는 상징주의와 비슷하면서 분명한 특징을 보인다. 표현주의 드라마는 극도로 주관적이며 극행위가 주인공의 시각으로 보여지기에 자주 왜곡되거나 악몽같이 느껴진다. 표현주의 극은 사회와 가족에 대립되는 경향이 잦다. 전형적인 표현주의 극에서 주인공은 자주 우연한 연관성을 지닌 것이 아닌 일련의 사건들 속을 여행하게 되고 이러한 극들은 스테이션 플레이처럼 구성된다. 언어는 단절되거나 전보문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짧은 대사와 서정적인 긴 대사가 교대로 행해진다. 배우들은 기계적이거나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등장인물들은 개인의 이름보다는 직책이나 신분으로 부르 불렸다. 대다수의 표현주의 극작가들은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사회주의적 명분이나 평화주의적 대의에 지지를 표한다. 기이한 무대 세상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문들을 집중했다.
표현주의는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겨우 15년 정도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수많은 표현주의 기법은 이후의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연극 속에 살아남아 여전히 표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비사실주의적 장치들이 오늘날에도 사용된다.
#2 미래주의(futurism)
미래주의는 1909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했으며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후에 아방가르드 연극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표현주의와 달리 그들은 전쟁과 발전적인 기계 문명의 시대를 이상적으로 그렸다. 그들은 과거의 예술적 이상을 공격하고 박물관 예술을 조롱했으며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식이 창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배우와 관객 사이를 분리하는 것에 반대했고 관객들이 서로 대립하여 적대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짧고 비논리적인 단편 합성 연극을 지지했으며, 연극에 새로운 전자 매체와 시각 예술, 인형극 등과 결합시키기도 했다.
'다다(dada)' 역시 생명력이 짧은 운동이었는데 그들은 미래주의자들과 같이 전통적인 박물관 예술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다다주의자들은 전쟁을 숭배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무의미하고 불합리하며 의심의 여지가 있는 예술에 대한 관습적인 정의들에 주목하여 거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다른 급진적인 예술적 표현 양식들과 같이 합리적인 설명을 거부하는 짧은 극들을 공연했다.
미래주의와 다다는 모두 예술의 혼합을 강조하고 대중 오락 기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퍼포먼스 아트를 예견하고 있었다.
#3 초현실주의(surrealism)
초현실주의는 1924년 다다에서 발전하여 프랑스에서 시작된 비사실주의 연극 운동이다. 초현실주의라는 명칭은 사실주의를 넘어선다는 의미이며 그들은 잠재의식이 가장 높은 단계의 현실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연극적으로 재창조하려 했다. 그들은 상징, 무의식, 꿈 등을 강조했으며 작품의 대부분은 마치 꿈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 가능한 사건들과 환상적인 사건들이 뒤섞이어 있었다.
#4 잔혹연극(theatre of cruelty)
'앙토냉 아르토'는 초현실주의에 처음부터 가담했던 사람으로 배우, 연출가,극작가, 시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그가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이론가로서였다. 그는 1930년대에 쓴 수필과 선언문을 통해 '잔혹연극'을 이론화했다. 그는 서양 연극이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으며 동양 연극을 연구하여 양식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르토에게는 연극이 문화적 행위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이었으며, 중요한 발상은 논리적 추리 또는 합리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직감과 경험 그리고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잔혹극의 특징이다. 그는 단어와 문법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언어의 우위에 반대하고, 연극의 중심에서 대본을 없애기를 원했다. 대신 진실은 직감적이고 정신적인 신호에서 왔으며 언어 대신 제스처, 신호, 상징, 리듬, 소리로 대체하고자 했다.
아르토의 작혹성은 보는 관객들의 신체적인 것이아니라 감각적인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공연은 그러한 감각적 연관성을 창출하기 이해 고안된 것이다. 그는 인간의 선천적인 폭력성과 공격성이 잔혹극을 통해 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연극은 직관적이고 원초적이었으며, 마력이 있고 잠재적인 영향력이었다. 연극은 전염병처럼 전파되어 사회의 모든 추함을 씻어낼 수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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